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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응선생

권태응시인

권태응선생님은 우리 고장 충주 출신의 문학가이자 독립운동가이다.

권태응선생님은 1918년 4월 20일 충청북도 충주시 충주면 칠금리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문학을 즐기며 글짓기를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1932년 충주 공립 보통 학교를 졸업한 선생님은 경성 제일 고등보통학교(현재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경성고보 33회 동기생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치밀하고 정의감이 있었으며 조선인 학생 차별 문제로 일본인 교사와 대립하기도 했으며 친일파학생과의 마찰로 경찰에 체포되어 보름 동안 구금되기도 했다.

권태응선생님은 도쿄에 유학 중이던 경성고보 33회 졸업생을 중심으로 '33회'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조선의 독립을 위한 모임을 했다. 그들은 사회주의 성향의 책을 읽고 토론하는 등의 활동을 펼치며 조국의 독립과 사회주의사회 실현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권태응선생님은 토속적인 내용을 소재로 한 작품을 많이 지었는데, 특히 아동들에 깊은 애정을 갖고 동시를 많이 발표했다. 동시이기는 하지만, 내용상으로는 애국과 항일의식이 담겨 있다. 대표적인 시집으로는 『감자꽃』이 있는데, 여기에 실려 있는 대표적인 시 「감자꽃」은 일제의 일본식 성명 강요에 반항하려는 의도를 갖고 지은 작품이다.

충주 출신 작가이신 이오덕 작가는 2001년 출간한 <농사꾼 아이들의 노래>에서 권태응선생님에 대해 “농사꾼과 농사꾼 아이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유일한 시인으로 높이 평가했다. 충주에는 윤석중 선생님 후원으로 탄금대 내에 감자꽃 노래비를 세워 권태응선생님을 기념하고 있으며 충주시 문인협회에서는 다양한 문화 활동을 주최하고 있다.

또한, 일제강점기 말기에 학생운동에 참여하여 일제에 대항했다가 스가모형무소에 수감되었던 사실도 조명되면서,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선생님에게 대통령 표창을 추서했다.

1944년 초에 귀향하여 결혼한 후 본격적으로 시를 집필하며 야학을 열어 항일사상을 강의했으며, 농민과 학생들의 화합을 유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선생님의 문학 활동은 4년이 채 되지 못한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전혀 알려지지 못했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3월 28일 충주에서 병사했다.